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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미래

《내가 알던 그 사람》 잊혀짐 속에서 지켜낸 나

by Yje55 2025. 7. 24.
《내가 알던 그 사람》은 조기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웬디 미첼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우리게에 "기억은 흐릿해져도 나라는 존재는 사라지지 않아요."라고 말합니다. 

내가 알던 그사람-웬디 미첼

우연히 이 책을 읽기시작했고 마지막장을 덮을 때까지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책장을 넘기는 내내 저는 마음이 먹먹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치매를 진단받은 한 사람의 기록이 아니었습니다.
기억이 하나둘 사라져도 ‘존엄’을 끝까지 지켜내려는 사람의 ‘존재 선언’이었거든요.

"나는 잊어버릴지 몰라도 내가 사라지는 건 아니에요."

웬디 미첼은 58세에 조기 발병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습니다.
영국 의료보험조합(NHS)에서 일하던 그녀는 직장에서도 유능했고, 두 딸을 키우며 단단히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치매는 너무 이른 손님이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녀는 좌절 대신 ‘준비’를 택합니다.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는 현실 속에서도 자신을 놓치지 않기 위해 매일 메모하고, 색깔 노트로 감정을 기록하고, 문서에 일상의 작은 힌트를 남깁니다.

그녀의 말처럼 “나는 여전히 여기 있다”는 외침은 단지 감정이 아닌 일상에서 실천되는 ‘의지’였죠.

삶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의 기록

진단 이후 그녀는 NHS 행정직에서 물러났지만 글쓰기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합니다.
블로그를 열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결국엔 이 책 《내가 알던 그 사람》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이 책은 2018년에 출간되었고 영국의 치매 인식 개선 운동의 큰 촉매가 되었습니다.
웬디는 강연 활동, 치매 환자 지원 캠페인, 의료 정책 조언자로도 활약하면서 스스로를 ‘치매 환자’가 아닌 ‘살아있는 사람’으로 끊임없이 규정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기억이 사라지면 나는 사라지는 걸까요?”

그녀는 치매에 지배당하는 것이 아닌 치매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나는 여전히 혼자 살 수 있어요” – 익숙한 공간이 주는 치유력

“치매 진단을 받았다고 해서 내가 나를 포기하란 말인가요?”
웬디 미첼은 조기 알츠하이머 진단 이후에도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나는 여전히 혼자 살 수 있어요.”

사람들은 종종 치매 환자는 돌봄이 절실하다고 그래서 곧바로 시설이나 요양기관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웬디는 오히려 ‘자신의 집’이야말로 치매와 싸우는 가장 강력한 공간이라고 주장합니다.

집이라는 ‘기억의 지도’

치매는 기억을 지워가지만 완전히 처음인 공간보다는 익숙한 환경에서 훨씬 더 천천히 진행됩니다.
웬디는 자신의 집 안을 치매에 맞게 조금씩 변화시켰습니다.
예를 들어 색깔별로 구분한 노트, 문 위에 붙인 메모, 커튼에 달린 라벨, 문 손잡이에 걸어놓은 힌트 등…
모든 것이 그녀를 ‘혼자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장치가 됩니다.

이런 생활 방식은 단순한 적응이 아닙니다.
주체적으로 ‘살고자’ 하는 의지이자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는 행동입니다.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공간의 힘

실제로 영국 킹스 칼리지 런던(King’s College London)의 연구에서는

“치매 환자가 요양시설보다 자택에서 머물 때 정신적 안정을 더 잘 유지하며 기억 유지율도 높다.”
는 결과를 얻어냈습니다.

이는 ‘공간적 기억(spatial memory)’이라는 인지 개념과도 연결됩니다.
집 안 구조, 냉장고 위치, 침대 옆 스탠드 스위치…
이런 익숙한 ‘공간 정보’는 치매 초기일수록 가장 오래 남는 기억의 형태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시설보다 자신의 집에서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자율성과 존엄, 인지 기능 유지에 매우 유익하다는 것이 여러 연구에서 반복해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웬디의 선언, 우리 부모님의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모든 걸 대신해주지 않아도 돼요.
저는 제가 익숙한 이 공간에서 저답게 살고 싶어요.”

웬디의 이 말은 단지 감동을 주는 문장이 아닙니다.
치매를 마주한 우리 부모님, 그리고 언젠가 나 자신에게도 꼭 필요한 삶의 태도입니다.

요양시설이 반드시 최선은 아닐 수 있습니다.
우리의 관심과 배려 그리고 환경을 바꿔주는 작은 노력만 있다면 어르신도 오랫동안 자신이 살아온 공간에서
‘자신의 삶’을 주도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을 지키는 힘, 그리고 삶을 새롭게 그리는 용기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도 언젠가 비슷한 질문을 마주할 수 있어요.
기억이 흐려지면 나는 어떻게 살아갈까. 부모님이 그렇게 되신다면 나는 어떻게 도와드릴 수 있을까.

웬디 미첼의 이야기는 그 질문에 완벽한 답을 주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낼 수 있다”는 용기와 방향을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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